“매일 출근하는데 직원은 아냐”...프리랜서 개발자 ‘불법파견’ 실태
전문가들 “사실상 ‘파견근로’인데 '파견법' 보호도 못 받아”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2-08-17 18:20:44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SW프리랜서의 불법파견실태와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 방안 토론회'에서 정보경제연맹 장진희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
- 프리랜서 개발자 A씨
프리랜서 소프트웨어(SW) 개발자들이 도급계약을 한 발주사에 직접 출근하고 업무지시를 받는 등 실제로는 파견 형태로 일을 하면서도 정작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SW프리랜서를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 포함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SW프리랜서의 불법파견실태와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 방안 토론회'에서는 SW프리랜서 노동자들이 겪는 불공정 사례와 이에 대한 실태조사가 발표됐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에 따르면 SW프리랜서로 전업한 A씨는 일명 '보도방(인력 사무소)'을 통해 지방의 한 금융기관의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그러나 업무 특성상 보안을 이유로 발주처 사무실에서만 일을 해야 했고, 업무지시도 발주처로부터 받았다. 발주처와는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업무형태로만 보면 파견근로를 했던 것이다.
사례를 제보한 대부분의 SW프리랜서들이 이 같은 파견 형태의 업무를 겪었다. 단순한 업무지시뿐 아니라 근태관리, 폭언까지 들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SW프리랜서로 일했던 B씨는 업무가 기체되자 발주사 측 관리자로부터 폭언을 들어야 했다. 며칠을 철야한 끝에 새벽에 귀가하려는 B씨에게 발주사 측 관리자는 '왜 벌써들어가느냐, 일은 다 하고 가느냐'며 가로막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B씨는 보도방이 발주처로부터 인력교체 요청을 받았다는 이유로 임금 지급을 거부하자 이를 지방노동청에 신고했으나,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마땅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보도방에서 SW프리랜서에게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경력 부풀리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문대학 출신인 C씨는 첫 프로젝트를 맡는 과정에서 보도방 측이 자신의 이력카드에 4년제 대학 졸업, 하지도 않은 프로젝트 이력 등을 기재한 것을 보게 됐다. C씨는 정정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보도방 측은 '계약불이행 시 받은 금액의 200%를 배상해야 한다'는 계약 조항을 들어 C씨를 압박했다.
SW프리랜서 설문조사 결과 ⓒ국민입법센터
SW프리랜서 78% "발주처로부터 업무지휘"...불법파견 경험
실제로 SW프리랜서의 대부분이 발주처로 출근하고 업무지휘를 받는 등 불법파견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제발표를 맡은 신석진 국민입법센터 운영위원은 SW프리랜서 성인남여 3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70.6%가 1차 이하 하청업체에 고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1차 이하 하청업체 고용된 이들 중 78.8%는 '고용한 업체가 아닌 상급 하청이나 발주처의 업무지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이를 '매번 경험했다'는 답은 절반 이상인 57.1%에 달했다. '가끔 경험한다'는 답은 21.7%, '경험하지 않았다'는 답은 21.2%에 불과했다.
장시간 업무 등 업무 환경도 열악했다. 응답자 절반 정도인 56.2%가 월평균 7.14일의 저녁근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야간 근무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45.9%, 휴일근무도 41.9%에 달했다.
그러나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장시간 노동에 대한 수당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경험했다는 이들 중 87%는 야간근무에 대한 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절반이 넘는 78.3%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은 차별 경험으로는 '명절 선물 없음'(45.3%)이었다. 휴게·휴무 제한(42.8%), 열악한 사무실 환경(42.5%)도 높게 나타난 차별 유형이다.
SW프리랜서들은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과제로 '표준계약서 마련 및 보급'(58.1%)이 우선돼야 한다고 꼽았다. 뒤를 이어 '업체 근로감독 강화'(22.2%), '신속한 민원 상담창구 마련'(10.9%) 순으로 답했다.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SW프리랜서의 불법파견실태와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 방안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
전문가들 "SW프리랜서, 파견근로자 적용해야...노동부, 관리·감독 필요"
전문가들은 SW프리랜서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파견근로자 지위'를 인정하고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이주희 변호사는 "SW 전문가들의 업무는 한국표준직업분류상 '컴퓨터 관련 (준)전문가의 업무'에 해당되며,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서 허락한 근로자파견대상 업무"라고 설명하면서 "SW프리랜서들이 실질적으로 파견근로자 형태로 일하고 있다면 모두 파견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사업자'는 소정의 기준을 충족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 처우를 금지하는 등 최소한의 보호책이 담겨 있다.
이 변호사는 "'소프트웨어진흥법'에서는 '정부는 소프트웨어기술자가 존중, 우대받는 사회분위기를 만들고 안정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등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사기 진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기술자의 사기 진작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부당한 노동 구조와 조건을 개선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를 향해 "SW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더 이상 방치되지 않도록 정부는 부당대우 및 각종 인권침해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토론 패널로 참석한 배현의 노무사도 "20년 동안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IT 노동구조에서 새로운 개선책보다, 현재 등록된 업체 관리감독이 선행돼야 20년의 악순환 고리를 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용노동부 김진영 고용차별개선과 사무관은 "불법파견법에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오늘 자료를 보니 평균 파견기간이 24개월인 것을 보면 업체에서 파견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을 쓰고 있음을 인지했다"면서 "SW프리랜서 노동자 스스로가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데 대한 어려움을 알고 있다. 일하는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에 적용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민영 소프트웨어 산업과 과장은 "조사 결과 중 표준계약서에 대해 홍보에도 소프트웨어 프리랜서 노동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현장상황에 당황스러웠다"며, "앞으로 더욱 홍보에 매진하고, 기업과 사업자들에게 표준계약서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이재국 하도급개선과 과장은 "공정위 주요 업무 분야인 건설, 용역, SW, 광고 영역에서 파견법과 하도급법 적용범위에 대해 어려움이 많다"면서 "이런 상황 속에서 관계부처 합동회의 등을 통해 여러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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